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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방직. 흔적 위에 골동품이 쌓아 만든 콘텐츠.

조양방직 내부

휴가를 맞아 머리식힐 가까운 장소를 검색하던 중 강화에 있는 '조양방직'을 찾았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조양방직'은 과거 방직공장의 흔적을 그대로 이용해 카페로 만든 장소다. 원래 이런 컨셉의 카페는 이전에도 있었다. 합정 당인리발전소 인근에 있는 '앤트러사이트' 역시 과거 신발공장 건물 그대로 카페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강화도 원도심에 위치한 '조양방직'은 평일 낮 서울에서 한시간 남짓 차로 달려 도착했다. 우선 마음에 들었던 것은 넓은 주차장인데, 서울에서 독특한 카페에 차를 가져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주차장이 있는 카페라 하면, 고층 빌딩에 임대해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대부분이 아닌가.

 

주차장에서 바라본 조양방직

처음 마주한 조양방직은 밖에서 본 부지가 예상보다 컸다. 한 눈에 안들어올 정도였다.

주차장은 조양방직 도로 건너편에 있어서 주차하고 길을 건너가야 했는데,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이것이 나름 괜찮았다. 왜냐면 주차 후 넓은 부지를 그나마 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도심 관광안내도

길을 건너 에어컨 실외기가 회랑처럼 늘어선 곳을 지나 걸어가면 주출입구와 강화도 원도심관광안내도가 있다. 관광안내도는 카페 사장이 설치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나같은 옥외광고업자에게 맡겨 설치한 냄새가 난다.

조양방직이 유명세를 타니 공무원다운 일을 했으리라.

 

앤틱 소품들을 별도로 전시해 놓은 공간인 상신상회
마치 회랑과 같이 기둘들이 연속되는 에어컨 실외기들

회랑처럼 굵은 기둥들을 지나갈 때의 느낌도 독특했는데, 왜냐하면 실제 철구조로 지어진 공장들에서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페인트 도장된 배경 앞에 대비되는 녹슨 철 기둥들이 의도한 것 같이(일부러 보여주려한 듯한)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건축의 아름다운 외관을 망치는 실외기 조차 조형 요소로 만든다. 

 

주 출입구

주출입구로 들어서면 입장하는 동선을 재미있게 했는데, 마치 티켓 박스를 통과하여 공연장을 들어가는 느낌이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던걸까? 입장객 유동량을 조절하려 했던걸까? 아니면 좀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 하고 싶었던걸까? 암튼 뭔가 전략이 있었음에는 틀림없다.

 

조양방직 출입동선
게이트를 들어오면 바로 마주하게되는 주출입구 - 그러나 이곳으로 들어가면 바로 카페가 나오지 않는다 . 

그간 사진만 찍으러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나보다. 주 출입구에는 주문을 해달라는 문구를 많이 붙여놓았다.

인터넷에 후기들을 보니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 앉을 자리도 없다던데. 넓은 공간이 꽉찰 정도에 주문은 안하고 들락날락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대책이 필요하겠지.

다행히도 내가 간 날은 비오는 평일이라 그런지 그렇게 불편을 느낄정도는 아니었다. 

 

주출입구의 첫인상은 - 곳곳에 '앤틱'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지만- 앤틱보다는 키치에 더 가까다는 느낌이다. 앤틱이라 하면 그 단어의 의미처럼 고풍스러우면서도 정확하지는 않아도 특정한 시대적인 감성을 주어야 하겠지만, 조양방직은 시간, 장소, 장르 할 것 없이 다 넣은 느낌.

 

그러나 뒤에 사진에서도 보여지겠지만, 점점 공간을 들여다 볼 수록 들어간 오브제들의 양이 워낙 방대하여 그 양적인 부분에서 오는 에너지에 압도된다.

주출입구 동에 있는 수많은 오브제들.

인트로 또는 프렐류드와 같은 출입구 동(건물)안으로 들어서면 오만가지 오브제들이 널부러져있다. 오! 하고 짧은 감타사를 나도 모르게 내뱉을 정도.  과연 이런것들을 어떻게 다 수집했는지 모르겠으나 입장하는 사람들을 곧바로 카페 건물로 들어가지 않게 하고 멈추게 한다.

 

그리고 프렐류드가 끝나면 건물들이 감싸고 있는 중앙의 정원을 보여줌으로써 "여기는 이런 곳이야." 하면서 장소의 성격을 한 눈에 보여준다. 다른 곳처럼 정문을 중심에 첫 시선이 닿는 곳에 두지 않는다. 메인요리를 일찍 내어 주는 것 같다.

마치 무언가 비장의 요리가 더 있는 것처럼. 

 

입장이 끝나면 처음보게될 장면.
카페 입구

마당의 이것저것을 구경하는 도중. 한참 뒤에서야 카페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든다. 카페 입구는 한쪽 편에 노멀하게 자리하고 있다. 튀지 않는다. 

 

공간의 크기에 비하면 주문공간은 소박한 편. 시그니쳐라고 할만한 눈에 띄는 메뉴는 찾기 힘들었다.(당근 케잌도 있었는데, 강화도의 다른 카페에도 있는 메뉴더라.) 음료나 조각 케잌 모두 7000원부터. 직접 들고 자리로 가는 테이크아웃치고 싼 가격은 아니지만, 공간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후에 느낀 것은, 이 곳 직원들은 주문코너에서만 볼 수 있다. 또는 빈 그릇을 반납하는 장소 뿐. 전체 공간 대비 서비스 공간의 영역이 작아서일까. 나머지 공간은 손님들이 알아서 즐기라는 느낌.  

 

주문을 하고 카페를 들어서는 짧은 과정. 여기서 확실히 이 장소를 계획한 사람은 갑자기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취향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주문을 하고 그림 액자들이 걸려있는 짧은 전이 공간을 지나면 갑자기 넓어지는 공간에 주춤할 수 밖에 없다. 

 

카페 진입 장면

 

내부 규모

카페의 본관은 개방적이고 넓다.

군데군데 방직공장 기계들을 그대로 두었으며,(큰 방직기계부터 각 테이블마다 있는 작은 재봉틀까지.) 그 외에도 옛 이발소 의자, 이발소그림(과거 이발소에 걸려있던 쌈마이 그림), 조각품, LP판 등등 어른들에게는 과거 추억놀이를 할 수 있는 오브제들이 큰 공간을 채우고 있다.

어떤 것들은 한 눈에 보이기도 하며 어떤 것들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발견되는 것들도 있다. 

 

사실, 이렇게 오만가지들이 대책없이 한 공간에 섞여있으면 좋지 않은 경우가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이 곳은 앞서 말한대로 어마한 양으로 극복한다. 

우리 주변에서 쉽지 않게 볼 수 있는 이른바 '추억의 포장마차','7080컨셉~'의 이런 점포들은 옛 포스터 몇장 붙여놓고, 혹은 옛 LP판 몇개 걸어 놓고 분위기를 내려한다. 그러나 이 곳은 차원이 다르다. 발에 채이는 수많은 골동품중에는 정말 희귀한 것들이 섞여있다. 그리고 그 분량이 많다.

 

반면,

그것들이 오히려 이 건축(방직공장)이 가지는 역사적 냄새를 희석시키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긴한다. 물론 건축 자체가 현대 건물이 아니며, 공장의 흔적들(각종 기계들, 야외에 있는 공장의 금고)이 있지만, 묵직하고 어두운 기계보다 알록알록한 색채의 7,80년대 플라스틱들이 눈에 더 들어오니깐.  

 

카페 공간의 큰 특징이 하나 있는데,

전체 공간의 중심에 두 줄로 된 바(bar)형식의 테이블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로지르고 있다. 그리고 바 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쪽편은 큰 창이 있는 정원 쪽, 다른 한 편은 상신 상회(골동품들을 한데 모아놓은 일종의 전시관)쪽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분의 의외로 개방된 한 공간을 사용자로 하여금 은근하게 다른 기분을 받도록  조닝하고 있다, 

공간을 분할 하는 중앙 통로와 통로 양 쪽의 긴 바테이블

언급한 '상신 상회'는 별도의 전시공간이다. 이 곳 주인의 콜렉트 능력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 특히 옛날 두더지 잡기, 문방구 앞에 있던 목마 타기 등 체험 요소가 많은 것이 특징.

 

상신상회 전경

앞에서는 잠깐 지나갔지만, 야외에도 볼거리는 많다. 특히, 옛 화장실이나 부속 건물들의 구조를 재치있게 활용한 점이 재미있다. 예를들어 재래식 화장실의 변기를 막고 칸칸마다 미술작품을 전시한다던지, 물탱크나 사일로를 야외 화장실로 이용한다던지.

내가 간 날은 비오는 평일이라 개방하지 않은 건물도 있었는데 그런 곳도 재미있는 요소가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갤러리로 변한 재래식 화장실 칸
건물 틈사이의 엘비스 프레슬리
소. 소 아래 창고는 과거 금고였다 한다.

앞서 얘기했지만, 조양방직은 많은 골동품 요소들을 한 데 모아 키치적인 장소의 느낌이 드는 곳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싸구려 같지 않은, 오히려 이 많은 것들을 수집하고 공개한 이 곳 주인에 대한 경외감이 드는 장소이다.

 

서울의 '앤트러사이트'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앤트러사이트가 '있는 그대로'를 철학으로 하여 역사의 한 켜를 '보존'하려했다면, 조양방직은 역사적 흔적을 모아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는 느낌이다. 거기서 방직공장의 건축은 흔적들 중의 하나로서, 또는 담는 그릇으로서 활용했다는 차이점을 들 수 있다.

 

어느 방향이든, 이런 작업들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옛 건물을 활용한다고 하여 결코 비용이 덜 부담되는 것은 아니며, 오래된 건축 점검에 대한 행정절차, 또는 재개발을 바라는 주민들의 동의 등 귀찮은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철학적 마인드를 가진 건축가 교수님들은 거의 대부분 옛 것을 가만두자고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야기를 끝내고 마는 경우도 많다.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의 여파, 오래된 것을 과연 그냥 두기만 할 것인지, 활용 계획이 있는지까지를 함께 고민해야한다.

 

유럽의 경우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로 두고 감상하는 것이 아닌 그냥, 오래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남겨두고 보존하는 것이 아닌, '오래쓰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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